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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을 보며.

by YU_MIN 2020. 3. 25.

 

 

 

  시대가 변했다고 계속 생각해왔고 그렇게 말해왔다.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장르 소설을 읽고 후기를 쓰며 소설 속 세계관에 달라진 시대가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시대착오적인 '빻은' 부분은 없는지를 언급하는 것은 필수적인 관문과도 같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후기로 쓰는 단계까지 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보기 싫은 것은 책을 덮어버리고 보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은 외면하며 내 취향에 맞는 정보만을 곁에 두고 지내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착각하게 되어버렸던 것 같다. 이 세상이 내가 생각하듯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했을 것이라고. 내가 '틀리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동의하고 있을 것이라고. 

 

  N번방 사건을 꾸며낸 모든 이들은 어쩌면 내가 의식적으로 보지 않던 부분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비생산적인 입씨름을 하는 것은 시간만 아까웠다. 그렇게 내가 내 입맛에 맞는 세상 속에 살고 있었듯 그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접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해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세상 속 다수의 '옳다'는 의견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껴야 할 양심과 죄책감이라는 것을 속이고는 방관하고 참여했을 것이다.

 

  10년도 되지 않는 새에 정말 많은 대형 사건들이 뉴스에서 다뤄졌다. 각계의 미투 운동, 소라넷 사건,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버닝썬. 대형 사건까지는 아니더라도 온갖 기상천외한 성추행, 성폭행, 강간 미수 사건이 연령과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의 N번방 사건까지 오게 되었다.

 

가해자에게 몇 년 형이 내려졌는지, 고위직의 누가 사건에 연루되어있는지, 피해자에게 어떤 처치를 해줄 것인지, 시스템적으로 어떤 부분을 강화할 건지 등 모든 뉴스의 초점은 사후 대응에 맞춰져 있다. 이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한 가지가 너무나 명확하게 존재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다른 것들에 가려져서 비교적 소홀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대중의 사고 깊은 곳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근본적인 부분을 변화시키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무수한 사건 사고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서 확고해진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문화 콘텐츠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뉴스, 영화, 광고, 책 등 사람들이 보고 듣는 모든 것들.

 

당장 내일이 되지는 않더라도 이런 근본적인 부분도 간과하지 않고 서서히 확실하게 변화시켜 그리 멀지 않은 언젠가는 '사람들이 과거와 다르게 이렇게 변했구나'하고 달라진 미래를 실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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